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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온날

노란 서성거림 길가를 걷다 멈췄다. 작은 '무엇'이 발목을 잡았다. 그 '무엇'이 산딸기라는 것쯤은 안다. 아니다. 그 '무엇'은 산딸기가 아니다. 붉은 산딸기 옆 노란 빛을 띤 빈 꼭지가 그 '무엇'이었다. 빈 꼭지는 산딸기 한 알을 누군가에게 양보한 채 아쉬운 마음에 여지껏 노랗게 서성거리고 있다. 그 양보가 없었다면, 산딸기와 함께 시나브로 썩어갔을 터였다. 이제 빈 꼭지에 서성거리는 발걸음이 쌓이고 쌓이면 수십 가지 얘기로 채워질 것이다. 오늘 이처럼 하나의 얘기를 만들듯.(20100705) 지리산 둘레길 인월부근을 걷다가 둑방에서 산딸기를 만나다. 더보기
달팽이에 추월당한 노트북 30분. 그동안 노트북 화면엔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여전히 빈 한글 프로그램만 열린 상태였다. 탐색기를 열어 USB에 든 문서를 불러와야 하는데, 탐색기는 반응이 없다. 그러니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잠시 생각하다가 한글에서 곧바로 불러오기를 시도했다. 5초, 10초, 30초, 1분... . 아무런 반응이 없다. 불러오기 창도 뜨지 않고 마우스는 아무런 자극도 주지 못하고 혼자만 돌아다닌다. 30분 동안 한 일이라곤 빈 한글문서를 열어둔 게 고작이다. 속도로 가늠하자면 시속 1미터쯤 될까 싶다. 달팽이와 달리기 했다면 결코 달팽이가 질 수 없는 상황이다. 평정은 잃지 말자 다짐한다. 이럴 때일수록 서두리지 말아야 한다. 답답하다고 이것저것 마우스질 했다간 노트북은 아예 굳어버릴께 뻔하다. 천천히 천천히.. 더보기
무엇의 증거 이제 막 모내기를 하려는 무논에 흰 새 한마리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는 그것만으로도 생명의 존재를 알렸다. 산간 비탈진 논에 모내기보다 먼저 날아온 새는 그 자체가 생명이었다. 이로써 우리는 친환경적인 삶을 맛 보았노라고, 거창히 한 줄 써 내려갈 증거를 갖게 됐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비록 증거는 갖게 됐지만, 그 증거가 곧 친환경적인 삶은 아니다. 아이러니는 거기서 시작한다. 우리가 친환경적인 증거를 더욱 많이 발견할수록 세상은 친환경적이지 않게 된다. 증거를 많은 사람이 보려할수록 세상은 반환경적으로 변한다. 거기엔 근본적 딜레마가 놓여있다. 이제 인간은 친환경적이 않기 때문이다. 이제 증거를 찾지 말고 증거를 만들어야 하는, 직접 증거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20100628) 5월초 지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