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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생태계

가을이별 Ⅰ 가을은 이별이 익어 가는 계절입니다. 봄 내 여름 내 푸릇한 향내로 사랑이 자라도 가을엔 낙엽보다 먼저 이별이 익어갑니다. 여름 끝에서 여린 살결로 돋아났던 이별은 사람들과 밤새워 술을 마실 때도 버스 창가 너머로 무심히 거리를 바라볼 때도 홀로 컴컴한 거리를 걸을 때도 조금조금 익어갑니다 여린 이별을 단단한 껍질로 감쌉니다. 채 흘리지 못한 눈물로 한 겹 미처 풀지 못했던 마음으로 한 겹 돌이키면 아리게 남는 기억으로 또 한 겹… 가을보다 먼저 이별이 익어갑니다. Ⅱ 이별을 떨구려 애써 몸을 흔들지 마십시오. 도리어 잎들만 서둘러 질뿐, 이별은 더 몸에 붙습니다. 잘 익지 않으면 결코 떨어지지 않는 게 이별입니다. 당신이 봄내 여름 내 사랑을 가꾼 정성은 어쩌면 이별을 단단히 여물게 하는 힘이었을지.. 더보기
“가을 낙엽보다 사랑이 먼저 지더군요” 당신은 공포영화를 좋아했습니다. 무서운 장면이 나올 땐 여느 여자들처럼 눈을 감기 바빴지만, 그럼에도 영화나 비디오를 볼라치면 공포영화를 다시 찾았죠. 도 그렇게 보게 됐었지요. 심야상영하는 1부를 보았을 때 나는 졸았습니다. 밤을 지새는 영화를 보기엔 너무 피곤했고, 영화 또한 지루하게 전개되었습니다. 덕분에 2부를 보았을 땐 시종 당신의 ‘감시’를 받아야 했습니다. 1부를 볼 때처럼 졸지 말 것을 단단히 다짐받은 당신이었지만, 나에 대한 ‘경계’를 게을리하진 않았죠. 그 경계는 여느 연인들 사이에 주고받는 사랑의 언어였습니다. “또 졸려고?” 관심이란 걸 받는 일에 서툴렀던 내겐, 다행히 그런 일이 행복한 일들이었습니다. 9월. 이제 그 경계와 감시는 해제되었습니다. 당연히 그 언어도 이제는 듣지 못.. 더보기
“사상의 환절기에도 마음은 담담합니다” 일요일 저녁, 비가 내립니다. 다시 태풍이 한반도에 상륙한답니다. 8월초 선배가 전남․광주 지역취재를 떠날 무렵에도 태풍은 한반도에 상륙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무렵 선배에겐 또다른 태풍이 마음속에 다가오고 있었나 봅니다. 7월, 모꼬지에서 밤새워 술을 마시고는 외롭다고 했었지요. 그 외로운 마음 한편에서는 지난 80년대 마저도 외롭게 만들 태풍이 불고 있었나 봅니다. 그저께 형수를 만났습니다. 10월호를 챙겨 들고 강진 촌놈과 함께 성내역으로 갔습니다. 원고 마감한다고 선배 소식도 제대로 묻지 못해 미안했던 마음을 조금이라도 씻을까 싶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책이 나오거든 찾자고 했었습니다. 애초 생각은 형수랑 아이들하고 저녁이나 할까 했습니다. 그래 집 근처에서 고기나 먹자고 강진 촌놈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