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썸네일형 리스트형 사람의 뒷길 최옥란, 그는 장애인이었습니다. 생후 100일 무렵 뇌성마비로 오른쪽 손과 다리를 제대로 쓸 수 없었습니다. 출산과 결혼 후에는 스트레스를 받아 팔이 거의 몸에 붙어버렸습니다. 최옥란, 그는 빈민이었습니다. 남매를 혼자서 키우던 어머니는 미군 기지촌 인근 식당 등에서 일품을 팔았습니다. 그 역시 청계천 벼룩시장에서 좌판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최옥란, 그는 여성이었습니다. 그는 이혼 후 아들을 데려오기 위해 양육권 소송을 준비중이었습니다. 그러나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인 그에겐 너무나 큰 희망이 었습니다. 최옥란, 그는 투사였습니다. 한때는 최저생계비 현실화 등을 요구하며 1주일간 농성을 벌였습니다. 그런 그는 2003년 3월 영구임대 아파트에서 음독자살했습니다. 신체 장애…, 경제적 가난…, 남성이 아.. 더보기 유일한 항변 2003년 5월, 새벽부터 중국대사관 앞에는 불법체류 자진신고를 위해 여권을 재발급 받으려는 수많은 조선족 동포들이 줄 맞춰 앉아 있었습니다. 경찰은 질서유지를 위해 통제에 나섰습니다. "모두 앉아! 당신 왜 일어섰어? 당장 집으로 가!" 다음날엔 번호표를 나눠주던 또 다른 경찰이 외쳤습니다. "서류를 안 갖고 온 새끼들은 당장 나와! 당신들 진짜 개새끼처럼 굴 꺼야?“ 한 경찰서에도 여권분실신고를 하려고 수많은 조선족동포들이 몰렸습니다. "중국 사람들은 워낙 저들끼리 싸우기를 좋아해요?" ‘질서유지’가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경찰의 말끝에는 ‘중국’ ‘중국’하면서 욕이 뒤따랐습니다. 그 안에 있던 한 조선족 동포는 욕이 울컥거렸지만 참아야 했습니다. 중국 사람이 모두 그런 건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더보기 어둠의 근원 소니아는 인도 북부 질란다루에 사는 열다섯 살 소녀입니다. 그는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그런 것처럼 5살 때부터 축구공 꿰매는 일을 했습니다. 어머니가 몸져누운 상황에서 아버지의 벌이만으로 생계를 꾸리기는 버거웠습니다. 그가 축구공 한 개를 꿰매서 받는 임금은 약 300원 정도였습니다. “밖에 나갈 시간도 없이 하루 종일 공을 꿰매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축구공 두 개를 꿰매고 나면 하루해가 저물었고, 하루 번 일당으로는 우유 1리터도 살 수 없었습니다. 인도의 한 시민단체에 의하면 인도에서만 축구공 꿰매는 아이들은 2만여명이라고 합니다. 파키스탄은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되지만, 정부는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축구공을 제조하는 초국적기업들이 제조노동자들에게 실질 임금을 보장하지 않는 상황에서.. 더보기 이전 1 ··· 7 8 9 10 11 12 13 1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