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썸네일형 리스트형 나무와 잎새 나무 한 그루에 매달린 잎들을 바라봅니다. 바람은 한 곳에서 불어도 잎새들은 모두 제각각으로 움직입니다. 몸을 뒤로 젖히는가하면, 조잘거리듯 팔랑거리는 잎도 있습니다. 수백 수천의 잎들이 제각각 다른 모습으로 바람을 맞이하지만, 그래도 그것은 나무 한 그루로 서 있습니다. 어떤 집단이나 조직이라도 한 그루 나무와 같길 바랍니다. 수십 수백 명의 직원들이 그 조직의 목적을 위해 단결과 화합을 이루면서도 각 개인이 가진 고유한 빛깔을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잎새는 가뭄엔 몸을 움츠려 수분의 발산을 막기도 하고, 때론 몸을 활짝 펴, 햇살을 몸 가득 담습니다. 그 모든 것이 잎새를 위한 일이지만, 또한 나무가 성장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만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무 역시 잎새가 푸른 여름을 맞이하지 못하.. 더보기 공존의 즐거움 98년 가을 어느날 대학로에 있는 동성고등학교에서는 평화 만들기 콘서트가 열렸습니다. 몇몇 팀이 교대로 공연하는 이날, 윤도현밴드가 무대에 오를 차례였습니다. 그 즈음 무대 앞쪽에는 영상이 비쳤습니다. 세계 최장기 양심수였던 김선명 할아버지가 주인공이었습니다. 45년간을 양심수란 이름으로 감옥에서 지내고는 96년 8월 사면된 김선명 할아버지. 병상에 누운 아흔살의 노모가 일흔 살의 아들을 알아보고는 얼굴을 쓰다듬었습니다. 공연장에는 윤도현밴드가 연주하는 ‘가을 우체국 앞에서’ 반주가 흘렀습니다. 그쯤에서 윤도현의 노래가 흘러 나왔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노래는 나오지 않고 반주만 홀로 흘렀습니다. 영상을 보고 있던 윤도현은 울고 있었습니다. 라디오에선 ‘두시의 데이트’로, 텔레비전에선 ‘윤도현의 러브레터’.. 더보기 강요된 ‘은닉’ 한 남자의 추모행사장에는 고인의 영정이 없었습니다. 부모로부터 받은 이름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죽은 뒤엔 당당히 동성애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던 유언… 그러나 자살을 선택하게 한 현실은 그의 죽음보다도 더욱 견고했습니다. 이 강요된 ‘은닉’속에서 단상에 놓인 피지 않은 백합이 스무 해 짧은 생의 날들을 아쉬워했습니다. 다만, 현수막만이 희망을 덧붙였습니다. “동성애자 억압 없는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2003년 4월 한 동성애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커밍아웃 후 힘들어 고등학교를 그만 두어야 했던 사회적 편견으로부터, 남은 동성애자들이 "한 번쯤 자기 손목에 칼 안 대어본 이가 없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깊은 사회적 차별로부터, 그는 홀연히 이별하였습니다. 그 이별 앞에서 차별과 편견이 .. 더보기 이전 1 ··· 4 5 6 7 8 9 10 ··· 1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