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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생태계/서른의 생태계30+31

30과 12분의 8 빗물 새는 방 새벽. 잠이 깼다.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밖엔 여전히 비가 내렸다. 불을 켜고 주위를 살폈다. 이미 어젯밤에 천장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곳에 세숫대야를 갖다 놓았다. 그런데 지금 들리는 물소리는 그쪽이 아니었다. 가만히 물소리를 듣다 보니 책상 위다. 책상 위 책꽂이에 물방울이 떨어졌다. 책이 얼마나 젖었을까. 일단 급한 대로 병을 가져다 조준해 물방울을 받았다. 그리고 책을 빼고 책꽂이를 치웠다. 신문을 깔고 함지박을 대고 몇 가지 조잡한 장치를 하고 물을 받는데 성공. 그래도 지난해보다는 덜 셌다. 9월이면 이 방을 떠날 거다. 그 생각만 한다. 별로 화가 나지도 않는다. 비가 샐 수도 있지. 그런 투다. 오전. 양재역. 비가 엄청 쏟아졌다. 채 5분도 안돼 구두가 젖고 바지도 .. 더보기
내 몸의 반란, 구안와사 얼굴 반쪽은 나를 잊었다 홀로 감지 못하는 오른쪽 눈, 함께 열리지 않는 입술 오른쪽 찡그려도, 웃어도 얼굴 반쪽은 무표정했다. 미동도 없는 반쪽 얼굴에 십여 개의 침이 꼿꼿이 섰다 의지를 내리려 한다 다시 움직여라 한다 그렇게 사흘 입술 언저리에 떨림이 인다 잠깐, 아니 그보다 더 짧게 이번엔 눈언저리다 더 미세한 떨림이 온다 그게 희망이 된다 침상을 둘러친 하얀 커튼보다 더 밝은 빛이다 갑작스러웠다. 황당했다. 12일 오후, 얼굴이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저녁을 먹는데, 입술이 벌에 쏘인 듯 퉁 부어 있는 느낌이었다. 한쪽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듯했다. 마비가 되고 있었다. 그 전날, 뒤통수가 마비된 듯한 느낌이 왔었다. 그러다 말겠거니, 매달 마감 무렵이면 그랬으니, 저녁을 먹을 때까지만 .. 더보기
여자랑 술 마시고 싶다 ‘여자랑 술 마시고 싶다.’ 마감 디데이 하루. 퇴근하면서 내내 들었던 생각이다. 밤 12시가 넘어 퇴근했다. 동료기자랑 버스를 타고 안암동까지 왔다. 동료를 보내고 다시 택시를 타야 했다. 1시. 집에 가는 버스는 이미 끊겨 버렸다. 택시를 기다리는데 횡단보도를 건너는 한 여자가 눈에 들어온다. 거리가 멀다.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횡단보도 앞에 멈춰선 택시가 쏘아내는 헤드라이트 불빛이 원피스를 입은 여자를 비춘다. 몸선이 그대로 드러난다. 잠깐…. 여자는 횡단보도를 건너 버린다. ‘여자랑 술 마시고 싶다.’ 다시 택시를 타고 집으로 오면서 생각한다. 여자가 있어야 한다. 술이 있어야 한다. 어디서 구하나. 여자…. 택시를 타던 곳, 안암동에서 5분이면 이른바 '미아리 텍사스촌'이 나온다. 걸어서 5분.. 더보기